2022년 6월 가공생산지 이야기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농부셨습니다.

작성자 : 성미전통고추장 최성호 대표

나의 어머니, 아버지
어린 시절 나와 형제들은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뛰노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논에 벼가 자라고, 밭에는 콩과 고추 같은 갖가지 곡식과 채소가 가득했습니다.
어느 날인가에는 한마을에 사는 아주머니가 갑자기 찾아와 우리 집 밭의 벌레가 넘어와 농사를 망치니 농약을 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 나의 어머니는 죄송하다고 밭 주변이라도 깎아보겠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1985년 어느 날 아침, “형, 누나랑 사이좋게 놀고 있어. 엄마, 아빠 다녀올게.”, ‘외국농축산물수입반대 가톨릭농민대회’ 일명 소몰이 시위라고 부르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쏟아지는 빗속에도 경운기를 몰고 길을 나서셨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거부하는 생명 농업을 실천하며 살려 노력한 농부 ‘최재두, 김영희 생산자’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고추장은 다른 이름의 농사
이곳은 충북 음성, 한살림농산에 첫 쌀을 공급했던 생산지 성미마을입니다. 1993년 시중 고추 가격이 폭락하면서 반품돼 돌아온 전국 생산자들의 건고추를 모아 고추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이 성미전통고추장의 시작이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은 농사를 짓고, 우리가 재배한 건고추에 타 한살림 생산자의 건고추를 더해 농한기인 겨울에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신안 임자도에서 여름내 땀 흘려 모은 소금, 괴산지역 한살림 생산자들이 농사지은 콩과 보리, 충남과 홍천 일대의 한살림 생산자들이 생산한 찹쌀은 그 부재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물품들은 어려운 시절부터 함께 생명 농업을 해 온 우리네 땀의 기록임을 잘 알기에 고추장 생산은 가공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의 농사였습니다.

고추장은 된장, 간장과 더불어 대두의 발효를 이용한 우리나라 가정의 밥상을 책임지는 3대 장입니다. 고추장의 영양성분과 유산균, 소화효소 등이 소화를 촉진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최근에는 캡사이신의 비만 방지 효과에 대해 연구로 관심을 받고 있는 식품이기도 합니다.

전통고추장은 담그는 집마다 제조방법과 원료의 비율이 다르고, 숙성기간마다 맛이 다르며, 자연발효의 전 과정을 자연조건에 의지하고 있어 항아리마다 오묘한 맛의 차이가 생기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기업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는 KOJI를 사용한 개량식 고추장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입안 가득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일관된 맛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고를 함께 해야 하는 품목이기도 합니다. 새벽녘 가마솥을 젓던 수고로움조차 즐거움일 수 있었던 배움의 기간을 지나, 여전히 어머니 손맛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계속 측정하고 맛보고, 계량하고 기록하는 일은 대를 잇는 농산물 가공과 유통에 가장 기본이 되어왔습니다.

우리밀 고추장 개발
최근에는 기존 찹쌀고추장뿐만 아니라 우리밀 고추장을 새롭게 생산하여 출하하고 있는데, 어렵게 찾은 안정기를 버리고 다시 새로운 요구들에 부응하기 위해 염도를 낮춘 우리밀 고추장을 개발, 생산하는 것은 소규모 가공인 우리에겐 미래 시장 수요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며 도전이었습니다. 시장조사를 하며 마트에서 찾은 비슷한 맛을 쫓던 모든 순간들은 실패작으로 돌아왔습니다. 산지의 실정에 맞는 우리 다운 재료, 맛, 방식으로 생산, 관리, 보관과 유통에 대한 기준이 서니 비로소 우리밀 고추장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다운 변화는 발효라는 전통의 가치를 지켜야 하며 생산자로서의 기준이 바로 서야 가능하다는 것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한살림 전통식품 생산자로서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전통의 맛들을 지키고 또 새로이 만들어 가야 하는가? 또한 어떠한 고추장이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높이고 식품의 맛과 영양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는가? 이러한 고민들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한살림농부이야기 2022년 6월호 중 가공이야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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