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지 초산정 이야기
작성자 : 초산정 한상준 대표
오랜 세월을 견딘 우리 전통 한옥에 가보면 마당 한쪽에 가을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는 장독들이 놓여 있습니다. 각각의 장독마다 식초, 고추장, 된장, 간장 같은 장들이 다소곳이 담겨 있고 부엌이나 광에는 몇 개의 단지가 놓여 있지요. 우리 선조들은 먹다가 남은 막걸리를 뜨듯한 부엌 부뚜막 위 작은 옹기에 솔가지를 꽂아 올려놓곤 하였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발효 되어 건강한 신맛의 식초가 탄생했습니다.
초산정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위한 술을 빚으신 것에서 출발합니다. 조금 남은 술을 부뚜막 위에 올려 놓으시고 식초가 다 되면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 사용하셨지요. 가끔은 체하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도 응급처방으로 활용하셨다고 합니다. 초기엔 쌀이 귀한시절이라 겉보리와 밀로 누룩을 띄우고 술의 원료도 겉보리였다고 하지요. 쌀에 수수, 조 등 여러 곡식을 사용하여 그 양을 늘렸고 그것이 오곡명초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술 빋는 것을 나라에서 금지하던 시절이니 할머니께서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몰래 숨어서 술을 빚으셨는데 추운 겨울날엔 집안에서 가축으로 기르던 소 거름더미 속에 항아리를 묻어 두고 술을 빚으셨고 무더운 여름날엔 집 뒤뜰 그늘진 감나무 밑에 땅을 파고 항아리를 묻어 술을 빚으셨습니다. 추운 날의 경우 소 거름더미 속은 따뜻했으며 여름날의 뒤뜰 땅 속은 시원하여 발효하는 것에도 좋은 장소였었지요.
생산지 초산정에서 땅 속에 항아리를 묻어 두고 식초를 숙성하는 것은 사계절 온도 편차에 따라 비중이 무거운 식초를 표면과 골고루 숙성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찾은 것이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뒤 1967년 맏며느리가 들어오고 집안의 술과 식초 빚기는 며느리 몫이 되었습니다. 이때까지의 식초는 집안의 필요에 의해서나 주변에 나눔을 위해 빚으셨는데 2005년 맏손자인 제가 영업신고를 하고 전통식초를 사업화하였지요.
1946년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초산정의 전통식초 빚기는 며느리와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좋은 식초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의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오곡명초는 식초의 신맛에 아세트산인 초산 뿐 아니라 구연산, 사과산, 호박산, 아미노산 등 다양한 유기산이 어울어져 새콤한 신맛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맛을 느끼는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 다섯가지 맛 중에 가장 건강한 맛을 고르라면 단연 신맛을 꼽을 수 있지요.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께서는 건강을 위해 소염다초(少盐多醋)란 말을 명심하며 살아 오셨습니다. 소금은 적게 먹고 식초를 많이 먹는다는 뜻이지요. 우리 선조들께서도 식초의 유기산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오랜 경험과 체험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좋은 식초를 활용하셔서 그냥 활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활용하셔서 무더운 여름날 더위 먹지 말고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건강한 몸을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