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가공생산지 이야기

발효의 꽃을 피운 백 년 이야기

1984년 오월, 장독대 한편에 무더기로 핀 모란이 날 맞이한 그 날, 나의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 시골 부잣집에 시집와보니 많은 농사일과 시골 살림살이를 비롯해서 버거운 일들이 많았고 종가의 시집살이는 그리 호강스럽지 않았다. 가스 시설이 있음에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 밥을 해야 했고 화롯불에 청국장을 끓여야 하는 일들은 새댁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운 얼굴에 재와 꺼멍(그을음)이 달라붙어 우스운 꼴이 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특히 장을 담그고 가르기를 하는 날에는 어머님의 풀 먹인 옥양목 앞치마는 매서운 서릿발처럼 버걱거렸고 찬바람이 도는 어머님의 뒤를 긴장하며 따라야 했다.
“장 담그는 일은 1년 농사다”라고 하시며 “장맛이 변하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삼 년이 걸린다”라며 초계 변 씨 장 담그는 비법을 세세히 전수해 주셨다. 장 담그기를 할 때 씨간장을 한 바가지씩 부어야 백 년 동안 장맛이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음식을 익혀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 무렵 시중에는 이미 수입농산물과 일식 된장이 들어와 우리 전통 식문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는 일조량이 모자라 장을 담글 수 없고 쉬운 것과 간편한 것에 익숙해져 가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졌다.

1992년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아버님과 함께 다농식품을 창업해 전통 메주를 만들어 장을 담그고 상품화했다. 농사일보다 부가가치도 높고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예상은 적중했다. 1993년 충청북도 농산물 장터가 5일 동안 열렸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을 출품 판매했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신문, 방송에 전국적으로 수십여 차례 보도가 되었다.장맛이 일품이다 보니 백화점과 농협 하나로 마트까지 입점하게 되었고 대기업 메주 가공까지 맡게 되었다.

1994년 한살림에 간장 공급을 시작으로 현재는 12가지 물품을 공급하게 됨으로써 환경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환경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살림과 인연을 맺으면서 풀 한 포기도 소중하며, 쓰레기 하나라도 아무 데나 마구 버릴 수 없는 양심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정직과 나눔을 실천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뜻밖에 명예로운 일이 따라왔다. 2001년 우리 농산물 가공 육성에 크게 기여한 바로 국무총리 상을 수상하였고 2018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78호에 지정되어 된장 부문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식품명인이 된 것이다. 초계 변 씨의 장 담는 비법이 역사성, 보존성, 문화성, 상업성을 모두 갖추어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백 년 된 씨간장 보관법과 장 담그는 방법이 독보적인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매년 햇볕에 잦아든 씨간장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를 고민 끝에 어머님의 소금 항아리 속 굴비를 보고 고안해 낸 큰 항아리 속에 작은 항아리를 넣고 백 년 씨간장을 넣었다. 그리고 주위를 소금으로 채워 공기를 통하게 하여 잦아들지 않고 변하지도 않도록 보관하였다.

식품명인이 되고 보니 어깨도 무겁고 후손에게 전통식품을 전수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인의 밥상 위에 산을 분해한 간장과 일식 된장이 어른 노릇을 하고 있고 족보도 없는 음식들이 올라와 잔치를 벌이는 모습들이 어색해보인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 옛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장 항아리를 닦고 어루만지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매사에 지혜로우시고 반듯하심과 평정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님의 깊은 사랑과 성품을 유산으로 받았다. 내 삶이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잊혀가는 우리 식문화를 널리 보급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살림 가족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리는데 씨간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기본 원칙을 성실히 고집하며 전통의 맛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신념으로 살아갈 것이다.

천 여개의 항아리에 장 익는 냄새를 맡으며 마음 가득 풍요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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