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보다 바름으로 전통된장 방주명가
‘오랜 기다림, 느리지만 가치 있는 먹거리를 만듭니다.’
“빠르게, 신속하게, 간편하게” 속도가 가치를 앞서는, 빠름에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살림은 빠름보다는 바름을 추구하며 느리지만 함께 살자는 운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처럼 천천히 생명활동을 존중하며 만들어지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한알의 콩이 밥상에 올려지기까지 1년 이상이 필요한 먹거리, 바로 전통된장입니다.
2021년 ‘참발효어워즈’에서 한살림 된장(산골된장, 우리콩된장), 고추장(솔뫼고추장)이 각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참발효어워즈는 좋은 먹거리순환을 위한 문화 캠페인부터 교육과 연구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슬로우푸드문화원에서 주최한국내 유일의 발효식품 전문 어워즈입니다. 누구나 맛있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누릴 수 있도록 좋은 먹거리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고 심의한 행사여서 뜻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전통 장은 미생물과 곰팡이의 작용으로 지역이나 기후에 따라 다양한 풍미와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맛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금번에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장을 담근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만드는 방식과 계절에 따라 맛이 변화함에도 기다려주고 꾸준하게 이용해 준 소비자 덕분에, 서로 밥이 되어주는 관계가 지속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전통을 지켜내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발효식품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소비자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을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심혈을 기울이는 장인정신이 필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협력하는 공동체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0년간의 긴 세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서로 마음이 통하고 뜻이 모아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장은 농사와 닮은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장은 정월에 담아 이듬해 여름 녘에 가야 포장(수확)을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콩은 봄·여름·가을·겨울 씻기고, 삶기고, 으깨지고, 절여지는 인고의 시간을 지나며 항산화 성분과 영양이 풍부한 된장으로 거듭납니다.
이러한 장을 만들면서 배우는 것은 ‘발효는 기다림의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도와 연구의 결과물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경북 농업기술원의 전통 장 연구팀의 도움으로 메주를 만드는 순간부터 온도와 무게, 질소, PH, 산도, 영양성분 등을 꾸준히 검사하고 기록하며, 지속적인 연구를 해왔습니다. 미신에 의존하던 과거의 발효방식과는 달리 과학적 방식을 통해서 가장 맛있는 장의 표준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도 생명이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에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함께 기도하며 마음과 정성을 모으고, 메주 한 장 한 장 소중한 생명을 다루듯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갖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만드는 손길에서 좋은 물품이 만들어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 저녁 식탁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는 단연 된장입니다. 한여름엔 풋고추와 된장만 있으면 밥 한그릇 뚝딱 먹는 아이들을 보며, 장을 만드는 생산자로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민족 고유의 전통식품을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먹어야 전통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효율을 따지는 시대를 살면서 장을 담그는 청년 생산자로서, 한살림 미래의 먹거리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전통 장의 가치를 이어가며, 소비자들이 찾아주고, 인정해주는 먹거리는 충분한 소통과 공감이 이어질 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2020년 전통 장을홍보하기 위해 매장 홍보활동을 월 2회 계획하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세 차례 정도 진행 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할 수 없기에 코로나 상황에서도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장”을 그리워하는 시대를 살며, 그나마 오가는 정을 코로나가 막고 서있는 것 같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그리워하듯,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다시금 만남과 연결이 활성화되어장맛 나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꿈꾸어 봅니다.